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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사회생활 수채화(황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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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촉석루 작성일17-01-31 15:30 조회1,734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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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사회생활 수채화(황인구)

 

 

나이가 드니 오늘 따라 웬지 모르게 지나온 날들을 뒤돌아 보게 된다. 어느 글귀처럼 정말 지나간 것들은 다 그리워지는 것일까.

 

내 어린 시절은 아름다운 도시 진주의 풍경화를 닮았다. 남강의 쪽빛을 품은 푸른 물결, 대숲의 시원한 초록 바람, 울긋불긋 사계절마다 색색이 변하는 비봉산 그리고 비봉산에서 보는 하얀 뭉게구름처럼 내려오는 지리산 줄기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내 고향은 내 어린 시절을 다양한 색깔의 풍성한 풍경화로 만들어 주었다.

 

어느덧 세월이 쉼 없이 흘러 내 고향 진주의 그림 위로, 바야흐로 모교(1973년 금오공고 입학) 무대가 덧입혀지고, 그로부터 사실상 객지 생활이 시작되었다.

 

부산과의 인연은 문현동, 육군차량재생창 화조공장(현재 부산 국제금융센터)에서 1976년부터 5년간의 군 복무를 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군 복무라는 게 낮에는 화조공장에서 구겨진 군용차량의 범퍼를 바르게 펴거나, 용접작업 등을 하면서 구슬진 땀을 많이 흘리는 것이었다. 지금도 군 복무기간 동안 늘 모범적이었던 병찬, 정호 친구의 해머 치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린다. 밤에는 각자의 미래 세계를 위해 학원에 가거나 대학에 다녔다.

 

온통 진초록에, 기름때로 가득했던 내 군 생활도, 가끔씩은 당감동파인 정호, 낙오 친구와 안락동파인 동민, 해성, 영호, 구익, 기타 파인 병찬, 인갑, 병육, 동원, 승배, 년교, 영수 친구들과 함께 캡틴규와 소주를 마시면서 기름때를 벗겼다. 기름때가 가신 자리 위로 서면에서 즐기던 영화와 음악 등이 체워졌다. 그리고 사하 을숙도, 태종대, 일광, 칠암, 용호동 등에서 열정적으로 나눈 우정들은 내 군 생활 마무리를 해가 떠오르는 일출의 수평선 마냥 빛나게 해주었다.

막상 제대를 하니 한동안 직장이 없어서 가슴 앓이를 많이 했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공무원 시험 공고문을 보고 응시했다. 행운이 주어져 1981년부터 부산시 공무원에 임용되어, 지금까지 35년간 부산시에서 근무하고 있다. 같은 직장(남구 용호3)에서 아내를 만났고 1녀와 2(쌍둥이)을 두었는데 맏딸은 지금 부산시 공무원으로서 내 뒤를 잇고 있다.

 

공무원 생활이란 것이 꼭 판에 박힌 것이라서 나라고 해서 특별한 무엇이 있겠는가, 느린 걸음으로 이기대와 회동수원지, 낙동강 강변 등의 갈맷길(2009년 희망근로사업으로 최초 갈맷길 조성)을 걷거나, 금정산을 산행하는 것과  내가 공무원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롯데자이언츠구단과 관련된 업무(조명탑, 전광판, 사직야구장 네이밍 판매, 장기계약 등)담당 때문에 간혹 프로야구를 관람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취미생활도 없었고, 모교 교훈대로 정성, 정직, 정밀적인 복무 자세로 오직 일에만 몰두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 나의 근무태도 탓에 주위 동료들은 나에게서 최백호의 낭만을 위하여와 같은 낭만을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 점이 못내 아쉽다.

 

사실 주마등처럼 스치는 지난날의 수채화 중에서 솔직히 어두운 그림이 여럿 있다. 부모님을 일찍 여원 일, 얇은 월급 봉투, 건강 문제 등, 그래서 이런 것들에 대한 보완이 많이 필요했는지 나도 모르게 화초를 가꾸는 일이 좋아졌고, 독서를 하더라도 인문서적이 손에 자주 들어왔다.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연암 박지원의 작품들 그리고 현대작가들 중에서도 감성적인 글들이 좋았다. 동료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들(하동 옥종 등)과 가끔씩 막걸리를 마시는 시간이 편하고 좋았다.

 

어느덧 60대 초입(공직 퇴직)을 앞두고 눈이 흐려지니 아이러니하게도 참 이 세상,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이다. 회색의 공장도, 쓸쓸한 가로등도, 흐린 눈으로 보니 물감을 푼 수채화처럼 정말로 아름답게 보인다. 앞으로도 내 삶의 수채화는 계속해서 그려질 것이다. 비록 조금은 어두웠던 내 그림 위로, 젊은 날 그리지 못한 채송화와 봉선화 두어 송이를 정성을 다해 반드시 그려 넣고 싶다. 내 고향 진주를 닮은 그런 꽃송이를................

 

댓글목록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잘 읽었습니다. 60대 초입에서 지난 군생활 등 일들을 회상하며 꾸밈없이 쓴 글이 좋았습니다. 못다그린 봉선화, 채송화 등 이제는 좀 더 시간을 갖고 제2의 인생의 멋있는 수채화를 완성하시기 바랍니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