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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만난 노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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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작성일19-12-18 14:54 조회7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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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에서 만난 노신사

입력 2019.12.18 03:01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방돔 광장에 금빛 베일을 드리운 가로등이 꺼진다. 나폴레옹의 아우스터리츠 승전 기념탑의 실루엣 뒤로 긴 어둠은 물러가고 천천히 아침 햇살이 차오른다.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던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연인과 함께 사랑의 도피처로 삼았다던 호텔 리츠 파리도 부드러운 적막감에 안겨 있는 이 시간. 방돔 광장에서 튈르리 정원으로 향하는 길은 초특급 호텔과 명품 보석 가게들의 거리다.

다른 도시를 여행할 때 빼놓지 않는 것이 이른 아침의 산책. 한낮의 소란스러움, 밤의 도취를 씻어낸 새벽녘의 도시는 말간 민낯을 보인다. 이 호사한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살펴보는 것도 파리의 아침을 느끼는 새로운 방법이다.

완벽한 파리지앵 스타일의 출근 패션도 있는 반면, 간편한 운동복을 입고 튈르리 정원을 향해 조깅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사치스러움과 실용성, 세련됨과 편안함, 이렇게 각기 다른 모습이 어우러지는 파리의 자연스러움.

칼럼 관련 일러스트

보석 거리를 천천히 걷다가 튈르리 정원으로 들어가는 횡단보도에서 걸음을 멈춘다. 건너편에 은은하게 빛나는 은빛 머리칼과 고급스러운 감색 정장이 완벽하게 어울리는 노년 신사가 서 있다. 오른손에 기다란 바게트를 든 그의 왼편에는 주인처럼 기품이 넘치는 애견이 늠름하게 서 있다. 노신사의 슈트와 바게트, 그리고 사냥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파리의 고풍스러운 석조건물과 낙엽 떨어진 가로수를 배경으로 그들은 도시의 잃어버린 퍼즐 한 조각이 맞춰 끼워진 것처럼 완벽한 사진 한 장이 된다.

방돔 광장 화려한 호텔의 총지배인일까. 출근 길에 애견의 산책과 간단한 아침 식사까지 겸하면서도 패션 감각도 포기하지 않는 노신사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신호등이 바뀌고 천천히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눈이 마주치자 그는 깊은 초록빛 눈동자에 친절한 웃음을 담으며 인사를 건넨다. "봉주르 마담!" 긴 다리를 우아하게 천천히 내디디며 걷던 개도 나를 흘끗 돌아본다. 그날 아침, 파리에서 만난 사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2/18/20191218001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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