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 행정동우회

자유게시판

동우회, 동호회, 개인이 올리고 싶은 글이나 소식 등을 게시기간을 정하여 게재

 

대한민국 울린 '치킨 한 접시'

페이지 정보

작성자 강산 작성일21-03-03 11:48 조회540회 댓글0건

본문


대한민국 울린 ‘치킨 한 접시’


[정진홍의 컬처 엔지니어링]


‘우동 한 그릇’의 감동, 33년전 일본 강타했듯<br>‘치킨 한 접시’의 사연 오늘 대한민국을 울려<br>착한 갚음의 연쇄반응… 거기 우리 미래 있다!

프라이드 치킨
프라이드 치킨

# 3월 들어 비록 날은 여전히 쌀쌀하지만 그래도 감출 수 없는 봄기운 마냥 가슴 따뜻한 소식을 접하며 마음이 울컥했다. 서울의 한 치킨집 주인과 조실부모한 형제 사이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다. 33년 전 일본 열도를 뒤흔들었던 ‘우동 한 그릇’의 감동 같다고나 할까? 망조(亡兆)가 들었다고밖에 할 수 없는 나라 안팎의 모양새지만 그래도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되어준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해본다.

# 서울 서교동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젊은 박씨. 그날 따라 코로나 때문에 정말 장사가 너무 안됐다. 그래서 혼자 가게 앞 골목에 나와 밤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치킨, 치킨” 하는 외마디 소리가 들렸다. 골목 안에 들어선 어린 초등학생이 내지르는 소리였다. 그 옆에는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형이 입을 앙 다문 채 주먹을 꽉 쥐고 서 있었다. 형은 어렵사리 입을 열어 치킨을 5000원어치만 먹을 수 없겠냐고 물었다. 동생이 치킨을 먹고 싶어 하는데 형은 사줄 돈이 턱없이 모자란 것이었다. 상황을 감지한 치킨집 주인은 형제를 가게 안으로 들어오게 한 후 메뉴판도 내보이지 않은 채 그 가게에서 제일 맛있는 것을 해주고 싶다는 심정 하나로 푸짐한 치킨 세트를 콜라 두 병과 함께 내놨다. 마침 홀 안에는 손님이 없어 형제는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맘 편하게 치킨을 먹을 수 있었다.

/일러스트=박상훈
/일러스트=박상훈

# 형은 수중에 있는 돈이 단돈 5000원이라 내심 불안하면서도 치킨을 보자 행복해하며 허겁지겁 먹는 동생을 보니 자신도 아무 생각이 없어져 주린 배를 채우듯 치킨을 모두 맛있게 먹었다. 그는 어릴 때 사고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하지만 이젠 나이 들어 몸 불편하신 할머니와 일곱 살 어린 동생의 생계마저 떠맡은 소년 가장이었다. 얼마 전까지 돈가스집 알바를 뛰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그나마도 그만둔 뒤 나이를 속여가며 택배 상하차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철없는 동생이 치킨 먹고 싶다고 울며 떼를 쓰니 마음이 짠했지만 편찮으신 할머니 보기도 뭣해 일단 밖으로 동생을 데리고 나왔다. 치킨집만 보면 들어가자고 조르는 동생이 너무 안돼 집 근처 치킨집에 들어가 염치없게도 5000원어치만 줄 수 없냐고 물었지만 문전박대만 당했다. 다른 곳에서도 매 한 가지였다. 결국 홍대 근처 서교동까지 걸어가서 ‘수제치킨 전문점’이란 작은 간판이 걸린 치킨집 앞에서 다시 쭈뼛거리다 이를 지켜보던 치킨집 주인과 눈이 마주치게 되었던 것이다.

# 얼떨결에 가게 안으로 들어가 보채는 동생 먹이려고 5000원어치만 달라고 한 것인데, 주인은 2만원 상당의 푸짐한 치킨 세트를 내놓고 콜라 두 병까지 내어 줬던 것이다. 내심 형은 치킨집이 장사가 워낙 안되니 주문도 하지 않은 비싼 것을 내어놓은 후 억지로 바가지라도 씌우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지만 치킨을 보자 환호하는 동생을 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치킨집 주인이 내놓은 것들을 모두 허겁지겁 먹어치웠던 것이다. 하지만 잠시 후 주머니 사정이 뻔한 형은 막상 계산하려니 앞이 캄캄해져 동생 손을 잡고 잽싸게 도망이라도 쳐야겠다고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정작 그 치킨집 주인은 맛있게 먹었는지 물은 후 이런저런 이야기만 나눈 뒤 돈은 다음에 내라고 하고선 되레 사탕을 쥐여주는 것이 아닌가. 형이 수중에 있던 5000원이라도 내겠다는 것을 한사코 받지 않더니 급기야 그 형제를 내쫓듯 가게 밖으로 내보냈다. 형은 다음 날 다시 찾아가 계산하려 했지만 치킨집 주인은 오히려 꾸짖듯 하며 돈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형에게 그것은 진짜 꾸짖음이 아니라 정말이지 얼마 만에 느껴보는 따뜻함이었는지 모른다.

# 그 후에도 어린 동생은 형 모르게 그 치킨집을 찾아갔고, 그때마다 치킨집 주인은 동생에게 배불리 치킨을 먹였다. 코로나 때문에 매출도 반 토막이 나서 가게 월세도 밀리고 식자재 발주마저 미룰 만큼 형편이 어려웠지만 말이다. 심지어 어느 날은 치킨집 주인이 동생을 데리고 자신의 단골 미용실에 가서 덥수룩한 머리를 자르고 다듬어 주기까지 했다. 미용실 주인 역시 치킨집 주인이 데리고 온 초등학생이 자식이나 조카가 아닌 것을 알았기에 따로 돈을 받지 않고 동생의 머리를 손질해 주었다. 뒤늦게 그것을 알게 된 형은 죄송한 마음과 부끄러운 마음이 함께 들어 더는 치킨집 주인을 직접 찾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근 일 년이 지나 코로나 때문에 소상인 자영업자들이 가장 힘들다는 뉴스를 접한 후 그 치킨집 아저씨가 잘 계신지 궁금하고 걱정이 돼 그 치킨집의 프랜차이즈 본사 앞으로 비뚤비뚤한 글씨로나마 꾹꾹 눌러 쓴 손 편지 한 통을 보냈다. 그 편지엔 그간의 사정과 사연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리고 이런 다짐으로 편지를 마무리 지었다. “처음 보는 저희 형제에게 따뜻한 치킨과 관심을 주신 (치킨집) 사장님께 진짜 진심으로 감사하단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앞으로 성인이 되고 돈 꼭 많이 벌어서 저처럼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면서 살 수 있는 철인 7호 홍대점 사장님 같은 멋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 도움 받은 것을 도와준 이에게 되갚는 것을 ‘페이 잇 백(pay it back)’이라 하고 도움 받은 것을 또 다른 이에게 갚는 것을 ‘페이 잇 포워드(pay it forward)’라고 한다. 치킨집 주인의 선행과 처신이 한 청소년 가장에게 자신이 받은 은혜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 갚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갖게끔 만들고 전국적으로 착한 갚음의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서 그래도 대한민국에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진실로 거기 우리 미래가 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