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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윤리 무너진 '노동조합 천국' (조선일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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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작성일21-07-31 11:52 조회5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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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윤리 무너진 ‘노동조합 천국’

2021년 7월 3일 오후 서울 종로3가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노동법 전면 개정 등을 요구하며 도로를 점거한 채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있다. 민주노총은 여의도에 집회 신고를 했지만, 경찰이 여의도를 원천 봉쇄하자 급히 장소를 종로로 바꾸고 대규모 집회를 강행했다./오종찬 기자
2021년 7월 3일 오후 서울 종로3가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노동법 전면 개정 등을 요구하며 도로를 점거한 채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있다. 민주노총은 여의도에 집회 신고를 했지만, 경찰이 여의도를 원천 봉쇄하자 급히 장소를 종로로 바꾸고 대규모 집회를 강행했다./오종찬 기자

실제 ‘노동자 천국’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아니다. 그렇게 불리는 나라는 오히려 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에 더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프랑스인데, 주당 법정 근로시간이 가장 짧다는 이유에서다. 호주가 ‘노동자 천국’으로 손꼽히는 것은 세계 최고 수준의 최저임금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도 이 ‘노동자 천국’들이 더 이상 부럽지 않다. 작년 근로자의날, “노동자는 이제 우리 사회의 주류”라 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는 빈말이 아니었다.

얼마 전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5.1% 인상된 9160원으로 결정됐다. 대통령 선거 공약 ‘최저임금 1만원’의 턱밑까지 오른 것이다. 대체 공휴일 또한 전격 확대되어 오는 광복절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3년 전에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시행되기 시작한 주 52시간 근무제는 금년 7월부터 50인 미만 사업체까지 적용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코로나 경제 위기 와중에 일어난 일이다. 방역 당국을 비웃는 민노총의 도심 불법 집회를 보라. ‘노동자 천국’은 몰라도 ‘노동조합 천국’은 확실하지 않은가.

“노동 존중의 사회”라는 문 대통령의 뜻은 십분 평가한다. 문제는 그 어간에 노동 본연의 가치가 무너지고 노동에 대한 열정이 식어가는 아이러니다. 근무 중 작업과 무관한 유튜브나 동영상 시청을 막고자 사 측(社側)이 와이파이를 제한하자 노조가 반발하고 나선 이야기는 국내 최대 자동차 회사의 사례다. 현 정부의 고용 창출 정책에 따라 공무원 사회의 인원이 급격히 늘자 윗자리의 근무 태만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소식도 자주 들린다. 농촌에서는 ‘농자천하지대본’이 틀렸다는 말도 있다. 힘든 농사보다 면사무소 주변 정리나 재활용품 분리수거 같은 공공 일자리가 더 쏠쏠하기 때문이다. 적극적 구직 활동 대신 현금 복지나 실업급여 수령에 재미 붙인 청년들도 주변에 적지 않다.

작금의 이러한 모습은 수십 년 전 우리와 크게 대조적이다. 60~70년대 대한민국의 근대화는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이자 ‘근면혁명(Industrious Revolution)’이었다. 노동 강도를 높이거나 노동시간을 늘리는 식의 근면 노동은 결코 특정 종교나 가치관, 민족성의 산물이 아니다. 세계사적으로 볼 때 그것은 시대정신이나 경제적 인센티브에 의해 좌우되었다. 고도 성장기에 한국인들이 유난스레 열심히 일했던 이유는 결코 타고난 천성 때문이 아니다. 땀 흘리며 노력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정부가 만들고 이를 대다수 국민이 믿고 따랐기 때문이다. 정치적 리더십과 사회 발전의 제도 설계 여하에 따라 사람들의 노동 의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물론 그때 그 시절 저임금·장시간 노동 체제로 되돌아가자는 주장은 아니다. 노동운동을 국가가 폭력적으로 통제하던 시대를 다시 맞이할 수도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7월 초 국제 공인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에 노동 부문의 선진화는 반드시 완수해야 할 국정 과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노동의 본질적 의미를 망각하지 않는 한에서다. 선진국일수록 확실히 쉬고 넉넉히 받는 만큼 일에는 절대 열중하는 노동 문화를 가지고 있다. 점심시간이 따로 없는 나라도 많고, 공직자라는 자부심에 시간 외(外) 근무 수당을 사절하는 나라도 있다. 일요일 오후가 대개 차분한 것은 월요일 출근에 대비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먹고살기 위해서만 일하는 게 아니다. 노동은 자존감과 자아 실현의 방편이기도 하다. 노동이 개인의 재량이나 선택만도 아니다. 그것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공적 의무이자 책임이기도 하다. 한동안 국력의 비약적 성장은 물론 사회적 계층 이동의 발판이기도 했던 근면혁명이 추억 속으로 사라지면서 지금 우리 사회에는 노동 규율과 노동 윤리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이대로라면 개인의 희망도 없고 국가의 미래도 없다.

차기 정부의 급선무는 누구에게나 일할 기회를 주면서 일을 통해 삶의 보람을 성취하는 역동적 사회 분위기를 다시 일으키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복지·평등 이념과도 충돌하지 않고 ‘워라밸’ 정신과도 모순되지 않는다. 전통적 노동 선진국에서처럼 말이다. 나쁜 정부는 국민을 거지나 노예 혹은 ‘무임 승차자’로 만들어 독재 권력에 의존하게 만들고, 좋은 정부는 일할 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 개인의 자립을 돕고 자유를 지켜준다. 내년 대선은 좋은 정부와 나쁜 정부를 가리는 심각한 한판 승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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