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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은 정권의 도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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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작성일22-05-05 09:17 조회4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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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무원은 정권의 도구가 아니다

원전 경제성 조작 지시 따른 공무원 구속… 부동산 폭등엔 공무원 탓
공무원은 헌법·법령 지켜야 하는 존재, 정권의 정책도 합법 절차 따라야

2018년 여름 공무원(기획재정부 사무관)을 그만두었다. 앞서 4년 전 ‘행정고시’(5급 공개 채용 시험)에 붙었을 때 너무도 기뻤고, 평생의 업으로 여긴 공직이었다. 그해 겨울, 정권의 불합리한 지시에 따라 절차적 합리성을 무시하고 정책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우리 사회에 알리고자 유튜브 영상을 만들고 기자회견을 했다. “열정 있고 능력 있는 공무원들이 나 같은 회의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공직 사회에서 ‘월성 원전 사건’과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등이 불거지던 때였다.

일러스트=이철원
일러스트=이철원

그러고 또 4년이 지났다.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사건에서 상부 지시를 어쩔 수 없이 따른 공무원들이 구속됐다. 다른 한편 집값이 비정상적으로 오른 책임을 정치인들은 ‘상부 지시를 적극 추진하지 않은 공무원의 잘못’으로 돌렸다. 어느 정치인은 이 나라가 ‘공무원의 나라냐’고 비난했다.

젊은 공무원 여럿이 자괴감을 느끼고 퇴직을 택했다. 전도 유망한 인재들이 학원 강사로, 가상화폐 거래소로, 로스쿨로 자리를 옮겼다. 몇 해 전 서울대 커뮤니티에 현직 사무관이 “비합리적 시민 단체의 요구를 수직적으로 지시하는 의사 결정 방식에 너무나 큰 회의를 느낀다”면서 “이 잘못된 현상을 알리고 바로잡을 수 있다면 목숨이라도 끊고 싶다”고 글을 쓰기도 했다. 공무원은 ‘철밥통’이라는데 지원자는 오히려 줄고 있다. 2011년 93대1이던 9급 공무원 경쟁률은 올해 29대1로 떨어졌다.

청년들이 공무원 되기만을 꿈꾸는 사회는 분명 미래가 없는 사회일 것이다. 그러나 한 나라 공무원 조직의 상당 부분이 집단적 회의에 빠져 있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다. 우수한 인재가 공직을 외면하고, 공직에 들어온 인재들이 불합리한 지시에 괴로움을 호소하는 나라에서 국가 정책이 제대로 운용될 수 있을까. 5년마다 바뀌는 정치권력이 공직 사회의 헌신 없이 복잡하게 얽힌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코앞의 선거 승리만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정치권이 합계 출산율 0.8로 떨어진 저출산 문제나 국민연금 고갈 문제에 진정으로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며 접근할 수 있을까.

문제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공무원 조직이 본연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무원은 선거 승리를 목적으로 내린 정치적 판단을 위해 억지 논리를 만드는 존재가 아니다. 공무원은 법과 절차, 그리고 합리적 숙고에 기반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단을 내릴 의무가 있고, 그런 판단을 존중하는 정치 문화를 정립해야 한다. ‘정무적 판단’이라는 미명 아래 공무원의 합리적 판단을 묵살하거나 공무원에게 무조건 따르라고 강제해서는 안 된다. 물론 국민의 선거로 선출된 정치인의 정책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도 공무원의 역할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정책은 합법적 절차를 통해 입안해야만 한다. 정치적 판단에 따른 정책 집행의 법적·결과적 책임은 전적으로 해당 정권이 져야 한다. 집값이 비정상적으로 오른 책임은 공무원 조직이 아니라 잘못된 정책을 강제한 정치권력에 있다.

공무원은 “헌법과 법령을 준수하고, 국가를 수호하며,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맹세한다. 공무원은 정치권력에 무조건 순종해야 하는 정권의 도구가 아니다. 공무원은 맡은 업무에서 공익을 추구해 나가는 헌법의 수탁자(trustee)여야 한다.

공직을 물러난 이후 많은 분이 응원하고 지지해주셨다. 항상 감사할 뿐이다. 그 응원 덕분에 이렇게 펜을 들 수 있었다. 새로 일하면서 다시 자리를 잡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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