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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포인트와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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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작성일26-08-17 15:32 조회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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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포인트와 6·25(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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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상훈
일러스트=박상훈

1950년 6월 6일, 미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 생도 365명이 소위로 임관했다. 임관 19일 만에 6·25가 발발했고 이 중 330명이 즉각 최전선에 투입됐다. 신혼여행 중이던 에드먼드 릴리는 제2보병사단 소대장으로 9월 3일 낙동강 전투에서 전사했다. 1950년 졸업생(Class Of 1950) 중 첫 전사자였다. 나이 22세, 임관 3개월 만이었다.

▶피터 몬포어는 고지전 중 전사했고, 데이비드 윌슨은 정전을 열흘 앞둔 1953년 7월 17일 전사했다. 웹스터는 적 스나이퍼의 총탄에 맞았다. 1950년 졸업생 330명이 6·25에 투입됐고 그 중 41명이 전사했다. 110명은 부상당하거나 실종됐다. 엘리트 초급 장교들이 가장 위험한 전투의 최전선에 투입된 것이다. 미국은 전사자가 많았던 1950년 졸업생들을 ‘십자가가 떨어진 기수(The Class the Crosses Fell On)’라고 불렀다.

▶브라이언트 무어 장군은 6·25 개전 때 웨스트포인트 41대 교장이었다. 개전 4개월 여 만에 중공군이 개입하자 9군단장으로 한국 전선에 급파됐다. 자신이 교장 때 양성한 초임 장교들과 함께 싸운 것이다. 그가 탄 헬기가 한겨울의 남한강으로 추락했다. 그는 동승자들을 탈출하도록 했지만 자신은 추락에 따른 쇼크로 몇 시간 뒤 숨졌다.

▶웨스트포인트 1915년 졸업생은 ‘별들이 떨어진 기수(The Class the Stars Fell On)’로 불린다. 졸업생 164명 중 59명이 별을 달았다. 6·25 때 미 8군 사령관으로 참전했던 밴 플리트 장군이 그 기수다. 폭격기 조종사로 6·25에 참전했던 그의 아들 밴 플리트 주니어 대위는 1952년 4월 격추 당한 뒤 실종됐다. 아버지는 “내 자식 때문에 다른 군인을 위험하게 만들지 말라”며 수색 중단을 지시했다. 그는 웨스트포인트 시스템을 한국 육사에 전수해 ‘한국 육군의 아버지’로 불린다.

▶1945~1951년 졸업생 중 150명이 한국에서 전사했다. 1945년 졸업생 25명, 1946년 14명, 1947년 12명, 1948년 17명, 1949년 30명, 1951년 11명이다. 태릉 육사에는 웨스트포인트 추모비가 졸업 기수별로 있다.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으로 숨진 보니파스 소령도 1966년 졸업생이다. 이제 50대가 된 그의 딸들이 엊그제 방한했다. 그의 추모비엔 ‘Freedom is not Free’란 문구가 있었다. 자유도 동맹도 공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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